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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대 총리 스가 요시히데를 알 수 있는 18개의 발언들(1)

캡틴전 2020. 9. 24. 23:49

제99대 총리 스가 요시히데를 알 수 있는 18개의 발언들

솔직, 원점, 사상, 신념, 신조를 어떻게 이야기해왔는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돌연 퇴진으로 긴급 대타 이미지가 강한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가, 취임 직후 내각 지지율 조사에서, 요미우리 신문 74%, 교도통신 66.4%, 아사히 신문 65%로 갑자기 고타율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베 정권 말기의 저조 속에서 순간적인 반동, 신임 총리 등장의 축의 회답에 따른, 일시적인 인기 상승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단, 다나카 전 총리와 나란히 '노력파 인생', 자민당 총재로서 처음으로 나온 '무당파 리더', 요코하마시 의원 출신인 '지방의회 경험이 있는 총리', 자민당에서는 우미베 전 총리 이후의 비세습 총리라고 하는 점도, 인기를 모았던 숨어있는 원인이며, 많은 국민들이 오랜만에 서민파 총리 탄생에 호감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는 스가 총리와 인터뷰로 몇 번이나 만나왔습니다. 예전의 수첩을 보면, 2008년 4월 14일 오후 4시~ 자민당 선거대책 총국장 취재라는 메모가 있습니다.

 

그 후에, 12년 12월에 제2차 아베 내각 발족으로 관방장관이 되었습니다. 13년 9월 26일, 관방장관 스가 씨를 처음으로 인터뷰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급습 후인 20년 4월 5일과 6월 21일에 두 번, 각각 1시간여를 코로나 대응, 정치정세, 향후의 과제 등에 대해, 폭넓게 질문하고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인터뷰에서 들었던 발언들 중에서, 스가 총리의 솔직함, 정치가로서의 원점, 독자적 사고방식, 발상, 신념, 정치 리더로서의 신조나 구상하고있는 비전 등을 알 수 있는 소재가 되는 단어들을 주워 등신대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지방이 특색을 살리고, 책임을 갖게 하고자 했다

 

1) 정치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13년 9월 취재)

 

스가 : 최근, 요코하마 시의원이 되었다. 지방 분권을 착실히 수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은 지방 교부세 교부금이라는 형태로, 국가에서 돈이 지방으로 이동한다. 그것을 부수고, 자기 책임으로, 각자의 지방이 특색을 살리면서 책임을 가지고 해 나가는 시스템을 만든다. 그것이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입니다.

 

2) 일본이 목표로 하는 정치나 사회의 장래상, 실현하기 위한 시나리오라는 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20년 4월 취재)

 

스가 : 아키타 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자랐고, 시골을 잘 알고있다. 일본은 지방도 도회도 잘 연대하여 발전해나가야 한다. 나에게 정치의 원점이기도 합니다.

 

3) 수직 행정의 타파를 주창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20년 6월 취재)

 

스가 :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정책이 수직행정의 벽에 저지당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 지금까지도 관광이나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직 구조 안에 묻힌 문제를 끄집어내어 정책을 추진해왔다. 향후에도 점진적으로 추진해가려고 한다.

 

4) 정치가를 목표로 한 동기는? 이라는 질문에 (12년 2월 취재)

 

스가 : 농가의 장남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업을 잇는 것이 싫어서 도쿄로 가면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현실은 엄격했다. 일하면서, 해야만 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대학에 들어가서 고민하기로 했다. 법정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하여 샐러리맨이 되었는데, 회사에서 정해진 일을 하는 것 말고, 자기가 결정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한다. 그것이 정치라고 생각했다. 1974년 참의원 선거에서 도쿄의 자민당 후보 선거를 도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노력했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찾던 것을 만났다. 이거다.라고.

 


 

역사책은 읽는다. 보통의 정치에 관심 없는 학생이었다

 

5) 대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라는 질문에 (14년 2월 취재)

 

스가 : 대학에서는 대개 공부는 안 했지만, 역사책은 읽었던 것 같다. 보통의 정치에 관심 없는 학생이었고, 정치에 대해 누군가의 영향을 받거나 무언가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6) 부친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14년 2월 취재)

 

스가 : 전쟁 전에 남 만주 철도에 근무하며, 전쟁에 패하고 돌아와서는, 넋 놓고 계셨다고 한다. 많은 것을 하려고 하셨고, 딸기 재배로 벼농사보다도 수입을 크게 만드셨다. 사람은 좋았지만, 안 좋은 면을 보아 왔다. 친부보다 내가 훨씬 치밀하다고 생각한다.

 

7)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14년 2월 취재)

 

스가 : 정치라고는 해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법정대학 취업과에서 OB모임의 사무국장을 소개받아서, 그 사람이 법정대학 OB인 나카무라 씨(전 중의원 의장)의 비서로 연결시켜주었다. 나카무라 씨는 은퇴하게 되었고, 같은 나카소네 파의 오코노기(전 통산상)의 사무소로 갔다. 정치가의 비서가 된 때가 가장 행복했다.

 

8)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14년 2월 취재)

 

스가 : 비서직에 근무하고 있었고, 다음으로 시의원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스가 군, 해 봐라.'라고 말한 사람이 주변에 있었는데, 농가의 장남이었기 때문에 아키타와의 결별, 아키타를 잘라내야 하는 것이 꽤 어려웠다. 시골에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결단의 시기에도 많이 고뇌하였다. 

 

9) 정치의 스승인 가지야마 전 관방장관의 영향은?이라는 질문에 (14년 2월 취재)

 

스가 :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배웠다. 파벌은 안된다고. 관료들을 다루는 방법과 언론에 대한 대응도. '관료는 자신들의 생각이 있고, 정치가에게 설명할 때, 반드시 그것을 들이민다. 너 따위 금세 속일 수 있다. 그것을 간파하는 힘을 가져야만 한다.'라고 엄하게 말씀하셨다. 언론은 '취재할 때는 처음부터 하나의 방향을 정하고 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가로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주저하지 말고 분명히 말해라'라는 가르침도 있었다.

 

-- 2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