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양품기획(무인양품)의 시련 스토리
한때, 무인양품이 경험한 위기의 역사
성공경험에 빠져있다가 맞게 된 위기와, 극복을 통해 새긴 교훈
지금은 일류기업이지만, 큰 위기에 직면하여 그것을 극복한 과거가 있다.
오늘은 'MUJI'라는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상장기업인 양품기획에 대해 알아보자.
현재는 그 입지를 확립하고 있는 무인양품이지만, 실제 2000년 경에는 쌓여있는 재고를 소각 처분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여 경제 미디어에서는 양품기획 무인(brand-less) 신화에 빠져, 점포 개설은 과다하며, 상품력은 저하되었다며 심각하게 지적을 받았던 시기가 있다.
왜 양품기획은 큰 위기에 빠진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V자 회복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위기돌파의 본질을 파헤쳐보자.
대기업발 벤처의 참신한 콘셉트
무인양품의 역사는 1980년에 시작되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유가, 버블 경제로 향해가는 일본의 소비사회에 대해 대조적 상징으로서 무인양품이라는 프라이빗 브랜드를 발매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무인양품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이유가 있고, 저렴하다.' 낮은 가격이지만, 싸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내추럴 테이스트'의 패키징으로 무인양품의 의류품, 가공식품, 잡화는 소비자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결과, 1980년대 전반에는 무인양품은 매출을 크게 신장시키게 되었다. 세이유의 무인양품 사업은 판매 개시 이후 겨우 5년 후인 1985년에는 약 150억 엔의 매출을 달성하였다. 1989년에 세이유는 무인양품 사업을 '주식회사 양품기획'으로 분리하고, 대기업 발 벤처라는 형태로 '양품기획'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버블 붕괴와, 그와 함께 소비자의 '값싸고 품질이 좋은 제품'을 찾는 기운에 의해, 무인양품은 순조롭게 지지를 모으며, 1995년에 주식상장에 이른다. 대조적으로 모회사인 세이유, 그리고 많은 슈퍼마켓들은, 체인점간의 차이를 내세우지 못하고, 몰락하게 되었다. 1996년 2월기 최종 적자로 전락한 후, 만성적인 적자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순조롭게 사업을 확대하는 양품기획은, 무인양품 신화라고 상찬을 받았다. 상장 직전인 1995년 2월 시점에 369억 엔이었던 양품기획의 영업이익은 2000년 2월기에는 1,054억 엔에 도달하여, 1,000억 엔 기업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순풍만범으로 보였던 세이유는 세종 그룹의 중핵을 담당하는 회사였다. 세종 그룹은 세이부 백화점을 중추로, 원 맨 경영자가 톱다운으로 경영하는 개성적인 기업이다. 세종 회사 문화의 최대 특정은 개인의 감성을 살리는 것으로 참신한 브랜드의 컨셉 등을 만드는 것과 같은 0에서 1을 추구하는 국면에서는 압도적인 힘을 자랑한다.
하지만, 설립된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1을 10으로 키워나가는 단계에서는 감성의 경영은 큰 폐해를 초래한다. 실제, 양품기획에서도 상품의 재고관리나 점포 관리의 매뉴얼 화 등 기본적인 업무개선은 경시되었고, 매출고/재고/상품개발 비용이라는 기본적인 숫자를 경영층에서초자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일상적인 상황이었다.
이에 더해, 1990년대 후반의 양품기획에는, '모회사인 세이유를 제쳤다.'는 교만이 만연하여, 사원조차도 무인양품의 상품 개선에 태만했다. 그런 양품기획의 틈새를 공략한 것이, 유니클로나 니토리 등의 전문점이었다. 특히 유니클로는 당시의 패션 업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출점 속도, 상품 품질, 상품의 합리적 가격'으로 순식간에 소비자의 지지를 받았다.
이렇게 '감성 경영'으로 성공경험을 극복하지 못하고, 양품기획은 2000년 2 월기 결산에서 이익이 감소하였음을 발표한다. 급성장기업의 이익 감소가 시장에 미친 임팩트는 컸으며, 1999년 말에는 2만 엔이었던 양품기획의 주가는 2000년 3월에는 3,000엔 대 까지 급락하였고, 당시 사장이 경영책임을 통감하며 사임하는 사태에까지 빠지게 되었다.
과거의 성공경험이 조직의 발목을 붙잡다
실적 악화로 사임한 전임 사장을 대신하여, 이 시기에 양품기획의 사장에 취임한 것이 1991년에 세이유에서 발령을 받은 마쓰이 씨였다. 취임 당시, 각 점포를 순회한 마쓰이 사장이 지적한 문제점은 '점포기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팔다 남은 재고를 소화하기 위해 할인판매를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그런 할인대상 상품이 난잡하게 진열되어있었기 때문에 각 점포는 어지럽혀져 있었다.
마쓰이 사장은, 판매가격이 약 100억 엔에 상당하는 재고 처분을 결행한다. 재무상 38억 엔의 재고를 특별손실로 계상하게 되었으나 상품의 순환을 개선시켜, 실적 악화를 지혈을 시도하였다. 이때에, 의류품 등의 일부 상품은 일부러 그 책임자를 앞에 두고 소각 처분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장의 의식을 바꾸려고 했다.
이 '재고처분 방법'으로, 예상했던 현장의 의식 변화는 가능했을까.
그 답은 No이다. 우선, 쌓여있던 재고는 다음 해에 다시 쌓이게 되었다.
즉, 문제는 재고품 자체가 아닌, 재고를 계속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있었다. 그리고 그 근본은 '세종의 회사 문화'. 즉, 데이터가 아닌 감성이나 콘셉트를 중시하는 체질에 있었던 것이다.
양품 기획이 도출해 낸 답은, MUJIGRAM이라는 매뉴얼 작성을 통해 전반적인 업무를 명문화하는 것이었다. MUJIGRAM에는 계산 시 대응에서부터 재고관리까지 양품기획에 필요한 업무에 대해, 현시점에서 베스트 프랙티스(최적)이라고 판단되는 요소가 포함되었고, 빈번하게 갱신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그것을 사원들에게 철저히 준수하도록 하였고, 회사 문화를 바꿈으로써 경험주의적 풍조를 일소시켰다.
이런 MUJIGRAM이야말로, 양품기획에게 있어 '세종의 회사 문화'와 결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면 아래에서는 발주 시스템을 개선하여 양품 기획은 재고 리스크를 낮출 수 있었다. 양품기획이 2006년 2월 결산에서 영업이익 1,408억 엔/동 순이익률 6.6%라는 V자 반등을 만들어낸 배경에는 MUJIGRAM을 통한 기존 회사 문화와의 결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베스트 프랙티스에 미래에 대한 답은 없다
기업경영이나 비즈니스에서 절대적인 정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객의 니즈가 끊임 없이 변화하는 이상,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둔 방법이라고 하여도, 수년 후, 수십 년 후에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 세상의 진리이다. 세종 그룹이 제창한 '감성 경영'은 버블 절정기에 있어, 최적의 전략이었으나 버블 붕괴 후에는 세종 그룹을 위험에 빠뜨린 원인이 되었다.
양품기획이 '감성 경영'의 잘못을 깨닫고, 세종이라는 시대착오적 회사 문화를 시정하여, 위기를 돌파한 것처럼 '어떻게 조직문화를 이어갈 것인가.'에 대해 시대에 따라 변화시켜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한편, 세상에는 절대적인 정답을 구하는 니즈 역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많은 경영자들은 컨설턴트에게 정답을 요구하고, 서점에는 베스트 프랙티스(최적)를 주제로 한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세상이 변화하는만큼, 정답도 변화하는 것이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결정된 정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비즈니스 퍼슨이 항상 고민해야 하는 것은, 세상에 유행하고 있는 정답이나 베스트 프랙티스를 맹신하는 것이 아닌 어떤 시대배경에, 어떤 방법이 보다 적절한가를 생각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염두하여야 할 것은 지금의 정답이 아닌,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