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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하는 야채! '타베초크' 여사장의 수완

내가 전하는 야채! '타베초크' 여사장의 수완

농가의 딸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직면한 일본 농업의 위기

 

 

'음식점 휴업으로 더는 매입을 해 주지 않는다.', '급식 판로가 사라졌다.', '매출처가 없어서 힘들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본 전국의 생산자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야채나 수산물, 축산물은, 음식점이 휴업 중이라도 관계없이 자라난다. 슈퍼 등의 소매점 향 판로를 개척하여도, 바로 판매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 생산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농산물 마켓 플레이스이다. 생산자는 무료로 상품을 내놓을 수 있고, 상품이 판매되면 수수료를 사이트 운영자에게 지불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에 창업한 비비드 가든은, 농산물의 온라인 직판소인 '타베초크'를 운영하고 있다. '4월에는 500건의 생산자로부터 SOS연락을 받았습니다.'라고 사장인 아키모토 씨가 이야기한다. 타베초크는 3월부터 5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확산 중이던 3개월 동안, 유통 총액이 35배나 늘어났다. 출품하는 생산자도 2월에 750건에서 5월 말에는 1,450건, 9월 시점에는 2,500건까지 증가하고 있다.

 

7월에는 TV CF도 개시하였다. 아키모토는 노도의 반년 간을 돌아보며, '타베초크가 성장한 것은, 일과성의 버블이 아니다. 인지도가 높아져서, 사업계획이 1년 앞당겨진 것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제야 시작점에 서게 되었다.'라며 웃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속의 생산자를 보고, 배송료를 자신들이 부담하였다

 

아키모토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이변을 느낀 것은 2월 말. 5명의 생산자로부터 '매출처가 없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영향은 전국구로 넓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3월 2일에는 배송료 500엔을 자사에서 부담하는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타베초크에서는 상품이 판매되면, 판매수수료로서 20%를 취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2,000~3,000엔의 상품이 많기 때문에, 판매되어도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배송료 부담의 반향은 컸고, 긴급사태 선언 중인 5월에는 하루 만에 2월 한 달 동안의 매출을 기록하는 날도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체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기업에게는 한계가 있다. 5월 말에는 눈물로 배송료 부담의 중지를 결정하였으나, 그 타이밍에, 농림수산성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곤란한 농산업을 대상으로 배송료를 무료로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6월부터 프로그램을 개시하며, 회사의 운영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7월에는 처음으로 TV CF도 방송되었다. 출품하는 생산자는 가속도가 붙은 듯 늘었지만, 같은 페이스로 유통액을 늘리지 않으면 생산자 1건당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SNS 등을 통한 마케팅도 구사하면서, 유통 총액은 순조롭게 늘어났으나, 성장통도 품고 있었다. 사용자들의 문의 건수도 35배나 늘었기 때문이다.

 

타베초크에서는 사용자의 문의 대응을 생산자를 대신하여 직접 담당하고 있다. 사소한 클레임이나 확인 문의라도, 가족경영 생산자에게는 부담이다. 하지만, 풀타임 근무 중인 8명 체제로는 금방이라도 펑크가 날 상태가 되어, 업무위탁이나 아르바이트 등 20명 이상의 채용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만둔 직원들에게도 도움을 받았고, 그야말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상태였다.

 

아키모토 자신도, 눈이 돌 정도의 매일을 보냈다. 4월 이후, 평일에는 자금조달을 위해 달렸다. 2019년 10월에 막 조달한 2억 엔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증발해버렸다. 회사 광고탑으로서, 취재 의뢰에도 적극적으로 응대했다. 배송료 부담으로 팽창해버린 적자와 TV CF의 광고비용, 그리고 한 번에 늘어난 인건비가 29세인 자신의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심야나 주말에도 문의 대응에 쫓겨, 새벽 4시까지 컴퓨터를 보고 있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 대응도 힘든 일이었다. 업무용에서 소비자향으로 전환한 것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소분 포장이나 발송 작업에 쫓기는 생산자가 급증하였다. 아무리 신경을 쓰더라도, 수작업인 만큼 실수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야채 농가에서는 월 700만 엔을, 해산물은 월 1,500만 엔을 판매하는 출품자가 생겨났다. 운영과 생산자, 소비자가 어떻게든 밸런스를 맞추며 확대되어갔다.

 

타베초크는 광고효과도 있어, 8월에 들어서서도 과거 최고 매출금액을 계속 갱신 중이다. 1월부터 간부 채용을 시작하였고, 사원 수는 20명까지 늘어났다. 6억 엔의 자금조달도 결정되었다. 아키모토는 '지금까지는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기업가 페이즈였지만, 올해는 경영자 원년으로 삼고자 한다.'라고 결심한다.

 


 

농가의 딸이 'DeNA 마피아가 되기까지

 

25세에 창업한 아키모토이지만, 대부분의 벤처회사와는 연이 없이 보내온 인생이었다. 가나가와 현에서 농가의 딸로 태어나, 모친에게는 '장래에는 공무원이 되어라.', '농가는 벌이가 시원치 않지만, 주식은 돈벌이가 되니 공부하거라.'는 말을 계속 들어왔다. 게이오 대학 공과부에서는 금융공학을 공부하였고, 취업활동 중에는 증권회사나 도쿄 증권거래소에 지웠하였다. 부모가 원하는 견실하고 안정된 생활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친구에게 권유받아 참가한 DeNA의 회사설명회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회장이자 창업자인 미나미바의 '리스크에 마구 휘둘린다.'라는 이야기에 자극을 받고, 그 후에는 프레젠테이션을 한 사원이 입사 1년 차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당당한 모습에서 30세 정도로 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사원의 성장과정에 매력을 느꼈다.' (아키모토)

 

망설이지 않고 DeNA에 입사, 3년 반 만에 4개의 사업을 경험하게 되었으나, 그중에 2개의 사업이 폐지되었다. 'DeNA에서 배운 것은 미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인드'라고 이야기하며, 광고영업에서 신규사업 세팅, 게임사업의 판권 비즈니스 등, 다양한 업무에 욕심을 가지고 임했다. 매일이 충실하였고, DeNA에 뼈를 묻을 생각이었다.

 

아키모토가 사회인으로서 활약하는 사이, 본가는 농업을 그만두었다. 오랜만에 돌아간 본가에서 어질러진 밭을 보고는 쇼크를 받았다. 이때, 처음으로 농업 비즈니스를 구상하게 되었으나, 동시에 DeNA를 그만둘 결심을 해야만 했다.

 

차례차례 신규사업을 세팅하는 DeNA에서는, 철저하게 시장을 조사한 후에, 어그레시브 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요구된다. 3년 후의 매출금액 목표를 100억 엔으로 설정하는 등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농업가의 EC라면, 시장규모는 한정되어버린다. '비즈니스 영역이 크면, 사내에서도 신규사업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농업이기에 창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키모토)

 

실제, 창업해보니 과제는 산적된 상태가 되었다. 이름 없는 사이트에 농산물을 출품하는 생산자가 쉽게 나타날 리 없다. 아키모토는 생산자들에게 찾아가서, '농가의 딸입니다. 도와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일을 도우며 그들 속으로 들어갔고, 출품을 늘려갔다. 그런데 산지 직판 야채의 EC라면, 이미 오이식스나 생협 등이 있는 상태였고, 차별화하여 존재감을 부각 키신 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생한 것은 자금조달이다. 2019년 10월에 2억 엔을 조달했을 때에는 '70개 회사로부터 거절당했다. 몇 번이나 사업계획을 재검토하며 9개월을 보냈다.' 세상은 벤처 붐에 들끓고 있었지만, 농업분야에는 투자가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아키모토는 주식 상장을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사업 모델이나 전략을 다시 검토했다. 소비자에게 어떻게 계속 구매를 유도할 수 있을까? 시스템을 검토하여 web에서 사용한 마케팅의 강점을 일부러 둔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기쁘게도 전 직장인 DeNA에서 출자에 참여하여 준 것이다. 출자가 무사히 성사되어 불려 갔을 때에는, 계속 동경해왔던 미나미바가 참가자로서 타베초크에서 취급하는 귤을 나누어주었다.

 


 

성장은 느려도, 기쁘게 일하는 조직을

 

더하여 8월의 6억 엔 조달에서도 DeNA는 추가 출자를 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DeNA 출신인 나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지만, 올해 8월에는 눈 앞의 수치들을 보고 사업의 가능성을 믿어 준 느낌이었다.'라고 아키모토 씨는 회상한다. 그 외에도 대형 벤처캐피털인 자프코가 주주로 참여하였다. 

 

창업 4년을 앞두고, 아키모토의 심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DeNA와 같은 조직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타베초크는 게임 업계와 비교하면 성장 속도는 늦고, 높은 수익을 내는 체질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존재 의의에 공감받고, 기분 좋게 일하는 조직으로 만들고자 한다.'라고 마음가짐이 바뀌었다고 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는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플러스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 '농가가 새로운 판로를 찾아, 직판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플러스. 농가에는 어떤 상품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정보 등, 시장 감각을 익혔으면 한다. 농가의 의식개혁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라고 지적하는 아키모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