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탁하지 않는 코로나에, 아베 총리는 무력했다
7년 8개월에 걸친 재임기간을 공세로 달려온 아베 신조 총리. 그러나,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수많은 난국에 대해 비판을 정면에서 답하지 않고, 국회에서 답변 부정이나 문서 조작 등으로 극복해 온 정권이지만, 바이러스에는 무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건강문제를 이유로 퇴진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그러나, 정책의 평가에 동정을 개입시키면 다음으로 이어지는 교훈을 놓치게 된다.
아베 정권은 동맹국을 위한 무력행사를 가능케하는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헌법의 근간을 묻는 안전보장 관련법의 성립을 강행하였다. 그 외에도, 비밀을 누설한 공무원을 벌하는 특정비밀보호법, 조직범죄를 준비했다고 보이면 죄를 묻는 공모죄 등, 평화나 인권에 큰 변화를 가져온 법률을 차례차례 성립시켰다.
야당이나 국민으로부터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왔으나, 정면에서 답하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숫자의 힘으로 정권을 유지해왔다.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피를 내세운, 이른바 아베 류의 공세였던 것이다.
강경한 공세를 담보하는 지반 다지기에도 여념이 없었다. 전 방위상인 이시바, 전 총무상 노다, 도쿄 도지사 고이케라는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정치가를 멀리하고, 쓴소리를 뱉는 의원은 해당 선거구에 자객을 파견하여 낙선시켰다.
관료가 관저에 저항하기 힘든 시스템을 구축하다
과녁은 관료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중앙성청의 간부 인사를 일원화 관리하는 '내각 인사국'을 발족시켜, 인사를 관료 주도에서 정치 주도로 변경시켰다. 관료가 관저에 저항하기 힘든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총리의 주변에는 경제산업성 등 경제활동을 추진하는 인물들이 보좌관으로서 붙었으며, 경제 우선의 노선을 줄곧 달렸다.
완성은 미디어에 대한 압력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에는 항의함과 동시에 비판적인 TV 방송국에는 출연하지 않는다. 총리의 회견에서도 사전에 질문의 통고를 요청하는 등, 제약이 부과되었다. 이윽고 미디어에게도 관저의 의향을 참작하여야만 일이 진행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것으로 손탁 정치가 완성되었다. 차제에 비판은 봉인되었고, 정치는 민의와는 동떨어지게 되었다.
총리 재임 중, 수세에 몰렸던 것이 '모리카케 문제'나 '벚꽃을 보는 모임'이었다. 야당의 추궁도 결정타가 부족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총리는 정면에서 추궁에 답하려고 하지 않고, 역으로 공문서를 조작하거나 폐기하여 난국을 헤쳐나갔다. 서민 감각을 잃은 재상에게는, 9억 5,600만 엔의 국유지를 1억 3,400만 엔에 매각하는 것의 부자연스러움과, 불공평감을 자각하는 서민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에 의해, 긴키 재무국의 직원이 자살한 것도, 총리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그 재상을 덮친 것이, 정체모를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바이러스만은 손탁을 하지 않았고, 궤변도 통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정치가나 관료와는 다른, 과학적인 근거를 중시하는 공중위생이나 감염병 전문가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궤변과는 대극에 있는 이 전문가들에게는 물론 나가타쵸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총리 재임 중,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태에 아베 총리는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코로나 대책으로, 우선 아베 총리가 착수한 것은 2월 27일에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대해 실시한, '휴교 요청'이었다. 총리가 신뢰하는 측근인 이마이 총리 보좌관의 진언을 받아들여 결단하였다고 전해진다. 벚꽃을 보는 모임 등에서 지지율을 떨어뜨린 총리로서, 기사회생의 한 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가 휴교를 실시하면, 일하는 부모들이 궁지에 몰릴 것은 예상 가능하다. 특히, 당시에는 아이들이 감염되어도 중병이 될 확률은 낮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던 일제 휴교는, 서민의 생활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었다.
아베노 마스크에 집중된 비난의 돌풍
수세에 몰린 총리의 다음 한 수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아베노 마스크이다.
전국적인 마스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아베노 마스크는, 측근 비서관이 '전 국민에게 천 마스크를 배포하면, 불안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라고 진언한 것을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당초에는 466억 엔을 들인다고 알려졌으나, PCR 검사 쇄도로 기능 부전에 빠진 보건소나 지방 위생연구소의 태세 정비를 외치던 시기이기도 하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April fool 아니냐.' 등의 비난이 돌풍처럼 몰려왔다.
결국, 각 가정에 배포되는 시점에는 마스크 부족 현상도 해소되었고, 스가 관방장관이 회견에서 '천 마스크 배포로 수요를 억제한 결과, 품귀현상이 개선되었다.'라는 근거가 취약한 말을 하여 실소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더 추격을 가한 것은 긴급사태 선언 기간 중이었던 4월 12일에 총리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동영상이다. 애견을 안거나, 찻잔을 손안에 품으면서 '여러분, 이런 자숙 활동으로, 많은 생명을 확실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당시는, 자숙생활을 강요받는 많은 국민이 불안에 빠져서, 당혹감이 퍼지고 있었다. 가게 경영자금이 부족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던 자영업자나,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나 직업을 잃고, 내일의 생활도 어찌할 줄 모르던 절망감에 빠져 있던 때였다. 그때에, 언뜻 보면 우아해 보이는 동영상은, 거꾸로 반감을 사게 되었다. 이것도 서민 감각을 잘못 이해한 소홀함의 극치이다.
한편,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예방 대책도 시기가 늦었다. 3월 하순에 감염자가 급증하여 의료현장이 비명을 지르고 있던 시기, 전문가들로부터도 긴급사태 선언의 필요성이 호소되고 있었으나, 경기침체를 우려한 관저가 선언한 것은 4월 7일이었다. 게다가 자숙을 요청하는 업종 등에서 도쿄 도와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지연되는 실수도 있었다.
총리는 국민의 앞에 서는 기회가 극히 줄어들고 있었다. 긴급사태 선언은 5월 25일, 7주 만에 전면 해제되었으나, 이날 총리 회견 이후에 국회가 폐회하는 6월 18일까지 총리는 한 번도 기자회견을 열지 않았다. 마지막 회견은,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전에 출석한 8월 6일로, 겨우 15분 동안 이루어졌다. 전국이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던 때에, 총리는 명백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검사가 늘어나지 않는 것은, 인적 부족도 있었다
총리 회견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다.
긴급사태 선언의 연장을 요청받고 열린 기자회견은 5월 4일이다. 비디오 저널리스트 진보 씨가 '검사를 늘리라고 해도 늘리지 않는 것은 진정 늘리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늘리려고 했으나 늘리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였고,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진정으로 의지가 없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이른바, 인적 부족 현상도 있었다.'
자신은 노력하고 있으나, PCR을 담당하는 보건소나 지방 위생연구소의 막힘 현상에 책임을 전가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실제로 보건소나 지방 위생연구소의 태세 정비는 민주당 정권이 미루고 있던 감염병 대책 중에서 중요한 교훈이었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시의 반성을 근거로, 향후 감염병 대책의 바람직한 모습을 검토한 '신종 인플루엔자 대책 총괄회의' 보고서에서는 '보건소나 지방 위생연구소를 포함하는 감염병 대책에 관한 위기관리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조직이나 인원 체제를 대폭 강화하고, 인재 교육을 진행한다.'라고 제언되어 있었다.
이 총괄 회의의 보고서가 완성된 것은 2010년 7월로, 민주당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제언이었다. 그 후에 이어진 것은 2012년 말 정권 교대를 완수한 자민당의 아베 정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소 확충은 하지 않고, 지방 위생연구소의 법적 근거도 방치하여 온 아베 정권이었다.
보고서에서는 이외에도 '미국 CDC 등을 참고로 하여, 보다 좋은 조직이나 인원체게를 구축하여야 한다.'라는 제언도 있었으나, 예산 조치를 수반하는 것에 대해서는 방치되어온 것이 실정이다.
한때는 '악몽과 같은 민주당 정권'이라고 이야기하던 아베 총리. 분명히, 국정을 안정시키는 등의 공적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감염병 대책에 있어서는 같은 말을 되돌려주어도 변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서민 감정은 멀어질 뿐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화하던 3월에는 '내가 결단하였다.' 등으로 정치 주도를 어필하는 발언을 계속 이어왔으며, 6월 회견에서는 '일본 모델의 힘을 보였다.'라고 자랑스러워하던 총리였으나, 결과가 수반되지 않는 총리의 말에 신빙성을 발견한 국민은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다른 나라에서는 각각의 리더들이, 좋거나 나쁘거나 그 발언에 의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에 비해, 아베 총리의 존재감은 옅어져 갈 뿐이다. 손탁과는 연이 없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아베 류는 통하지 않았다.